겨울 내일로 전국여행
기간 : 2010.1.6 ~ 2010.1.11 (5박 6일)
경로 : 대구 → 포항 → 영주 → 안동 → 서울 → 목포 → 해남 → 순천 → 부산 → 대구
여행비용 : 23 만원
때는 2009년 12월 초.. 수능을 치뤄 끝낸 난 하는 일 없이 빈둥대고 잉여생활을 하면서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던 나는 한 단어를 떠올린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운영하는 '7일짜리 열차 프리패스티켓'인 '내일로(Rail路)'가 떠오른 것. 검색해보니 원래는 여름에만 운영을 했는데 운 좋게도 겨울시즌 내일로도 운영을 한다고 하더라. 수능이 끝나고 나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본다는 배낭여행을 꿈꿔 왔던 나였고, 이번 내일로는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티켓에 수험생 할인까지 적용되어서 무려 반값인 27300원에 판다는 것이 아닌가(당시 정가 54700원)? '오, 이거 괜찮네'.. 하던 나는 수험생 할인 적용기간을 본 순간 패닉에 휩싸인다. 바로 다음날인 12월 11일부터 이틀간만 반값에 판다는 것. 당시 티켓을 살 현금이 없었고, 또한 11일은 학교를 가는 날이었기도 했으며, 선착순이라는 말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정을 친구 둘에게 간단히 설명해주고 함께 여행을 가자는 요청을 해 보았다.
째랙스 : ..그러하다. 기차여행 콜?
친구 1, 친구 2 : 콜 ㅇㅇ
..역시 쿨한 친구들. 휴지가 있건 없건 간에 일단 똥은 싸질러 놓고 본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모한 결행으로 인한 피해를 본 게 한두번이 아닌데도 또 이런다. 물론 악의 축은 나지만. 일단 결심하고 나니까 설렌다. 무지 설렌다. 아직 티켓도 사지 않았는데 가고싶은곳들을 쭉 나열하고 고르기 시작한다. 패닉. 여기서 내가 전국의 4개 웨이포인트를 반시계방향으로 찍고 오자는 소박한 꿈을 발표한다. 4개의 웨이란 강원도 정동진, 서울, 해남 땅끝마을, 해운대를 뜻한다(내가 멋대로 정한 것). 일단 큰 기점을 정해 두면 나머지 세세한 지역들은 채워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기간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이것도 문제였다. 일주일동안이나 집을 떠나 있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여행 기간을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서 최대한 정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12월말쯤에는 여행객들이 많을 것 같아서 제외했고, 1월 중순~말이나 1월 초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준비 기간이 길면 그만큼 자금을 많이 준비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우리는 얼른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한시라도 빨리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리곤 일단 티켓부터 사고 보자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설렌 상태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우리는 내일로 티켓을 발권하러 동대구역으로 갔다. 선착순이라길래 수험생들이 많을 거 같았는데, 의외로 거의 없었다. 동대구역 도착. 2009년 당시 내일로 운영이 몇 년째라고는 하더라도 매표원분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겨울시즌 내일로는 그 해의 운영이 처음인것도 영향이 있었나보다. 전날 밤에 이미 코레일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해 둔 상태로 역을 방문했는데, 확인해보지도 않고 돌아가서 회원가입을 하라고 하시던 직원분 덕분에 500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하여 역 내의 인터넷을 사용해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다른 매표원께 가서 구매하니까 바로 발권해 주시더라(2009년 당시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았었음).
그렇게 발권해 온 내일로 티켓. 출발 전날에 찍은거라 바닥에 여행 일정표가 깔려 있다.
일단 티켓을 발권해 놓으면 귀찮아서라도 환불은 안 할 테니까 어떻게든 되리라 믿고 질러버렸다.
당시 저희들에게 있는 것이라곤 티켓과 열정, 그리고 의지뿐이었다. 노가다를 하던 대출을 하던 자금 따윈 어떻게든 마련하겠다는 의지 말이다. 전형적인 스무살의 철없는 패기.그러나 그것은 명백하게 무모한 도전이었다. 무모했지.
어쨌든 그렇게 하루하루 일정 계획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의견 충돌이 정말 많았다. 여행 주최는 내가 했기에 기본은 나한테 맞춰서 나머지 의견을 조금씩 반영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에 (당연히) 따라 주지 않는 친구들 덕에 많이 다투곤 했다. 게다가 출발 날짜가 며칠 안 남은 1월 2일, 친구 2가 탈락합니다. 여행자금 부족 크리로 티켓을 환불한 것. 그래서 이번 여행은 째랙스(본인=반찬)와 토끼(=친구 1) 이렇게 두명이서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7일간의 루트도 최종 결정이 났다. 날짜마다 색깔별로 나눠서 보기 좋게 해봤다.
애초에 계획했던 4웨이 중에서 강원도는 제외한 루트. 도저히 갈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전국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서 열차가 지연되기까지해서 여행을 접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 루트를 그대로만 수행해도 엄청난 수확. 티켓값 본전 이상을 뽑을 뿐만 아니라, 강원도를 제외해도 제법 많은 곳을 다닐 예정이기 때문에. 내 여행 자금은 내가 모아둔 돈과 아버지께 약간 빌린 돈으로 약 30만원을 준비했다.
그리고 출발 전날이 되자 짐을 싸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온다. 이때까지 짐도 안 싸고 뭐 했나요? 일주일동안 집을 나가서 쏘다닐것이기 때문에 세면도구와 여벌의 옷은 필수. 그래도 여름이 아니기 때문에 겉옷을 제외하고 속에 껴 입을 기본셋만 챙기면 될 거 같았다. 가방은 아무래도 등산용 배낭이 제격일 거 같았다. 속옷, 양말, 우비, 우산, 세면도구, 디카, MP3, 통장, 핸드폰/디카 충전기, 티슈, 수첩, 필기구 등등. 별 거 없었다. 옷을 제외하곤 대부분 보조가방에 다 넣어서 갖고 다녔으니 말이다. 나중에 찜질방에서 무게를 재 본 결과 내 배낭이 6kg, 친구의 배낭은 7kg가 넘었었다. 둘 다 이런 걸 메고 잘 돌아다녔다. 남는 게 체력 아니겠는가.
어찌됐건 드디어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출발하게 된다. 6시 15분에 만나서 동대구역으로 가기로 했다. 8시 열차를 타고 포항으로 갈 예정. 예정대로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약속시간에 제대로 만나려면 적어도 5시에는 기상해야 하고, 늦잠 자면 큰일나니까 일찍 자야했다. 조금 들뜬 마음으로 조심스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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