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척이다 잠에서 깨 보니 버스가 멈춰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 암흑이었고, 휴게소나 어딘가보지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렇게 꿀잠을 다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전국노래자랑 오프닝같은 우렁찬 음악소리가 버스 내부를 강타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뜨니 밖은 해가 떠올라 밝아오고 있었고, 밖은 어느 고산지대 마을의 한 번화가였다. 소리의 정체는 바로 곤히 잠을 청하던 승객들을 깨우는 음악소리였고, 버스가 싸파에 도착한 것이다. 원래 6~7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내가 잠깐 잠을 깼을 때 이미 도착한 것이었고,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았기에 기다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한 5시간 만에 도착했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험하게 달려온거야..
일단 짐을 싸들고 광장 귀퉁이에서 숙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꼭두새벽이었기에 체크인할 수 있는 숙소는 거의 없길래 일단 숙소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보여서 거기를 거닐며 카운터에 직원이 있는지를 쭉 훑어보았다. 몇 군데 들어가 봤는데 사람이 계속 없었다. 그렇게 한 20분을 헤맸을까. 다행히 한 곳을 찾아서 방을 잡았다. 짐부터 던져놓고 양치만 간단히 한 뒤 아침밥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싸파는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에 위치한, 베트남의 스위스라 불리는 고산지대 마을이다. 그래서 날씨가 험한 날이 많다는데, 내가 도착한 바로 전날에 비가 억수같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엄청 맑게 갠 하늘이 너무 좋았다. 이제 막 아침해가 뜬 터라 거리는 한산했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좀 더 한적한 길이 보였다. 어느 건물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방 청소를 하고 있던 직원이 뛰어나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혹시 숙박을 하지 않았는데도 조식메뉴 주문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흔쾌히 미소를 지으며 된다고 하는 직원. 메뉴 주문을 하고 느긋하게 아침 햇살을 만끽하는 나를 힐끗힐끗 보는 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동네 백수같은 행실의 외국인 여행자가 나타나 맥주를 곁들인 조식을 먹는 게 신기했나 보다.


소박하지만 든든한 조식1을 마치고 싸파의 동네 뒷산 격인 '함롱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전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 교회 건물이 보이는 중앙 광장에 먼저 가 보았다. 여행객들은 그리 많이 보이진 않았고 현지인들만 가득했는데 내가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니까 아이들이 다가와서 신기한 듯 쳐다보곤 했다.


함롱산에 오르는 길은 마치 동네 뒷산 둘레길처럼 느긋했다. 경사가 심하지도 않고, 길도 잘 닦아놔서 좋았다. 올라가는 동안 행상꾸러미를 풀고 수공예품 악세사리를 파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딱히 팔 생각이 없었는지2 나에겐 그리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난 이미 하노이에서 이것저것 산 터라 아쉽게도 사 주질 못했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다시 산을 걸어 올라갔다. 정상 전망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고, 금방 정상에 올라보니 싸파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호강을 한창 하며 상쾌한 공기를 마셔댔다. 좀 휴식하다가 하산을 했고, 숙소로 돌아가서 오후까지 낮잠을 잤다. 이번엔 밥집 찾기 겸 마을 구경을 하기로 하고 다시 숙소를 나섰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구경을 했다. 한창 공사중인 곳도 많았고, 약간 시끌벅적한 여행자거리같은곳도 있었다3.



거의 매 끼니마다 맥주를 물 대신 먹었던 것 같다4. 베트남에 들어오고 나서 하노이맥주만 마셨는데, 이 집에는 싸파가 있는 지역인 '라오까이'라는 이름이 붙은 맥주가 있었다. 딴데선 안 파는 것 같아서 마셔보았다. 맛은 그냥저냥. 하지만.. 쌀국수가 정말 깊고 진한 맛이었다. 딱히 끌리는 메뉴가 없을 땐 쌀국수가 최고다. 나라 전체 쌀국수 맛의 평균 역치가 엄청 높았으니깐. 최소한 쌀국수를 시키면 실패하지는 않는다.

다 먹고 나니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시 교회 광장으로 가니 버스킹하는 사람들도 있고 각종 군것질거리를 파는 포장마차 비슷한 것도 많았다. 내일은 근처 로컬 산골인 깟깟마을에 가 볼 예정이었다. 갈 수 있는 방법은 도보, 툭툭이 투어링, 바이크 렌탈 등이 있었다. 시간을 때우며 일단 어떻게 할까는 내일 생각해보기로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또 맥주와 군것질거리를 사서 숙소에서 먹고 일기를 쓰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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