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출국일이 다가왔다.
새벽 4시경의 인천행 버스를 타기 위해 세발이를 만나서 동대구 버스터미널로 갔다. 지금에야 동대구역과 지상철이 합쳐진 복합환승센터가 되었지만 당시엔 편의점 하나 없는 작은 버스터미널일 뿐이었던 동대구 버스터미널. 새벽에 잠이 덜 깬 상태로 가서 버스를 타고야 출출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대한 시간을 아끼고 빨리, 싸게 가려면 새벽에 가야 하는 걸.
월요일 오전 11시 출국에 일요일 오후 귀국 편이었는데 공항은 사람이 제법 많았다. 동남아시아 성수기가 시작되는 시즌이어서 그랬던가? 아무리 그래도 11월인데. 그래도 다행히 사람은 금방금방 빠졌고 무사히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겨울옷을 다 배낭 깊숙이 쑤셔 넣고 반바지와 반팔티, 크록스로 환복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고향집 동네 뒷산까지 다 누비고 다닌 크록스는 정말 유용한 신발이다.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탑승시각을 기다리며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시간이 되어 하노이행 비엣젯에어를 탔다. 따로 신청하지 않았던 기내식을 시켜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제꼈다. 끊어자서 피곤했던 눈을 감고 잠깐 잠들고 나니 금방 도착이었다. 2시간의 시차가 발생하였고 현지시각 14시10분에 하노이공항에 도착이었다. 이것저것 절차를 밟고 유심을 사고 현금인출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거의 15시가 넘었었다. 하노이는 베트남에선 북부지역에 속하지만 어쨌든 제주도보다도 위도가 낮은 지역이므로 11월말의 날 치고는 후텁지근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고, 일단은 출출한 배를 채우자는 세발이의 의견에 적극 동참해서 근처에 보이는 아무 밥집이나 들어가기로 했다.
베트남에 왔으니 베트남 음식을 먹어야지! 하며 베트남쌀국수와 하노이맥주를 시켰고 사이드메뉴도 시켰다. 예전의 여행에서 느낀 건데 고수를 못 먹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난 고수가 너무 좋았다. 그 특유의 쌉쌀한 향과 맛.. 얼큰하고 깊은 쌀국수에 톡 쏘는 라임을 쥐어짜고 후루룩 한뚝배기 하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하니 땡긴다.. 음..
아무튼, 일단 배는 든든하게 채웠으니 제일 먼저 숙소를 구해야 했다. 어차피 첫날은 하노이 시내를 적당히 구경하며 간단히 지내고 싸파로 넘어갈 예정이었고, 숙소를 잡는다면 짐을 맡길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일단 숙소를 따로 잡진 않았다. 하지만 밤에 싸파로 바로 넘어가기 위해선 나이트버스를 구해야 했고 그렇게 발품을 팔려면 일단 등에 짊어진것부터 내려놔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싸면서도 시내와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적절한 위치에 있는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트립어드바이저를 뒤지며 그렇게 찾은 첫 숙소는..
당시 트립어드바이저 어플로 체크인했던 기록이 남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검색도 해 봤는데 여전히 나오는 게 신기하다. 숙소의 위치는 오토바이 한 대도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에 위치해서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막상 체크인하고 나서 보니 시끌벅적한 하노이의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골목 속이라 차나 오토바이가 잘 다니질 못해서 오히려 조용했던 장점이 있는 곳이다. 시설도 나쁘지 않고, 4인 도미토리 기준 가격도 1박에 10달러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짐을 풀고 일단 시내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호안끼엠 호수와 맥주거리 등 구경거리들이 많았다. 거리가 고만고만했기 때문에 걸어서 다녀도 충분했다. 길에는 오토바이가 정말 많았으며, 정말 정신없이 지나다녔다. 며칠간 그 오토바이 속을 뚫고 지나가는 걸 포기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침착하게 균일한 속도로 걸어가면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알아서 피해 간다고 했다. 1
여러 곳들을 보며 구경하고 사진찍고 하다가 덥고 지쳐서 어느 로컬 카페에 앉아 연유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세발이가 갑자기 말을 툭 던졌다.
세발 : 난 싸파 안갈란다
째랙스 : ? 왜? 싸파가면 여기보다 덜 덥고 시원하고 좋을 거 같은데
세발 : 좀 귀찮아짐 ㅎㅎ 이동시간 아깝고, 여기도 좋은데?
째랙스 :
아.. 즉흥적인 나보다도 더 즉흥적인 친구놈때문에 일정이 틀어질 순 없었다. 나는 그래도 싸파에 가고 싶었고, 세발이는 하노이 놈팽이를 하길 원했기에 각자 즐기다가 그냥 일정만 맞춰서 이틀 뒤에 여기 카페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혼자서도 잘 노는 놈들..
하노이에 오후에 도착했었기 때문에 해는 금방 저물었다. 저녁은 어떡할까 하다가 내가 맥주거리에 가 보자고 제안했다. 길거리 생맥주가 한 잔에 1만동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고 했다. 베트남이라 그런지 맥주거리도 뭔가 정신없고 혼란스러웠지만 친근했다. 마치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만선호프 앞 골목이나 대구의 똥집골목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2. 3
나는 22시경에 나이트버스를 타고 6~7시간을 달려서 싸파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먹고 세발이와 헤어졌다. 간단한 짐만 싸들고 싸파행 나이트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해외에서 완전히 혼자 다니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뭐 어떻게든 되더라. 난 영어가 최소한의 필수적인 회화만 가능했지만 핸드폰 있고 돈 있으니 다 괜찮고.. 그렇게 내가 탈 버스를 찾아서 탑승을 완료했다. 4
나이트버스는 복불복이 정말 심하다고 들었다. 명색이 야간에 잠을 청하며 달려가는 버스인데 자리가 좁거나 엄청 불편한 경우거나, 어떤 버스는 버스 안에서 바퀴벌레가 득실거린다는 후기도 있었고, 냄새가 심하거나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탑승하는 승객에 따라 환경이 다를 수도 있는데, 내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됐다. 내가 탄 버스는 세로로 길게 세 줄로 되어 있는 버스였는데 가운데 줄은 양 옆으로 다 뚫려 있다 보니 공간은 넓지만 자다가 굴러 떨어질 수도 있고 통로에 사람들이 화장실을 가거나 이동하며 움직이면 닿아서 불편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내 자리는 우측 맨 뒤에서 두 자리 앞이었다. 자리를 잡고 힙쌕을 단단히 여미고 자세를 잡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일기를 간단히 쓰는데 하지만 맨 뒷좌석에 앉은 흑인 누님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흑누님들 특유의 억양과.. 말투.. 유쾌한 시끄러움.. 밤이 아니었으면 같이 떠들고 했겠지만 몰려오는 피로에 불쾌할 뿐이었다.
수다를 떨던 흑누나 3명은 다행히도 얼마 안 가서 잠들더라. 약간 난잡했던 버스 내부가 이윽고 조용해졌고, 도심을 벗어났는지 창밖은 완전한 암흑 속이었다. 일기를 마저 다 쓰고 싸파에 도착하면 뭘 먹을까 생각하며 나도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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