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기온이 올라서 그런지 눈은 어느정도 멎었고, 대신 폭우에 가까운 진눈깨비가 퍼붓고 있었다. 우리는 트레킹 일정의 반의반밖에 진행하지 못했지만 아쉬워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에 하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어제 사고를 당한 스페인팀도 그렇고, 우리라고 다를 게 없을수도 있었다는 아찔한 생각에 하산해야만 했다. 마두도 계속해서 강조해왔고, 이대로 하늘이 멈추지 않으면 길이 끊길수도 있다면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서둘러 짐을 싸고 하산할 채비를 했다.
무심한 히말라야. 살다 보면 다시 와 볼 기회가 한번은 있겠지.
하지만 비가 스콜처럼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있어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빗발이 조금 약해지면 가려고 좀 대기했다. 그러다가 출발했는데 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짐은 엄청 많은데다가 물을 먹어서 무겁지, 내리막길인데다가 길이 점점 유실되어 없어지고 있었지, 허탈함과 걱정과 두려움 등이 한데 뭉쳐서 다급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올라왔던 길을 다시 거꾸로 비를 뚫고 내려가서 점심시간때쯤엔 다라파니까지 내려왔다.
마두가 시간 안에 도저히 못 내려갈거라고 얘기를 해서 우리를 픽업해줄 지프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다른 트레커들도 마찬가지인 상황인지라 포카라에 지프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최악의 상황에는 몇천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고 구조 헬기를 불러야할수도 있다고 했다. 낙천적인 우리들은 어떻게든 되겠지 이러면서 치킨과 피자와 감자와 에베레스트맥주를 먹고 마시며 티츄를 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마두가 다행히도 지프를 한 대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내려가다보면 지프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는 상태였다. 다만 엄청난 폭설과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길이 유실되고 파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얼른 가야만 했다. 조금 가다 보니 지프차 한대가 올라오는게 보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일단 탑승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유실되고 있는 산길이 차 한대 폭보다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다. 차를 탈 게 아니라 뛰어서라도 내려갔어야 했다. 길 한복판에 위에서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차로 갈 수 있을까?
유실되고 있는 길이다 보니 길이 수평이 아니라 약간 비스듬한 경사길에 겨우 매달려서 가는 꼴이 되었다. 우리는 최대한 안쪽으로 붙자며 미쳐가고 있었다. 엄청 좁고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있는 구간에 맞닥뜨렸는데, 지프 기사는 우리보고 안심하라면서 갈 수 있다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심지어 차 내부에 틀어놓은 BGM은 네팔 전통의 아주 신나는 음악이었다. 진짜 절망적인 상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날은 너무 위급한 상황이라 기록이 거의 없는데, 차에서 모기가 찍은 동영상이 한 편 존재했다. 길 폭이 차 폭보다 좁아서 차가 기울어지는게 보이는가? 길이 유실되고 있는게 보이는가? 진짜 지금 생각하면 술자리에서 평생 허허허 웃을 수 있는 술안주얘깃거리지만 당시엔 정말 위험했다. 마지막엔 큰 고비 구간을 넘겨서 터진 안도의 실소. 휴..
아무튼 겨우 유실구간을 통과하고, 3시간정도 내려와보니 비가 그쳤고 안전해보이는 곳이 나왔다. 웃긴 게 이런 일만 했다는 지프 기사도 꽤 힘든 구간이었는지 유실구간을 통과한 뒤에 이마에 땀을 닦으면서 우리에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하...ㅋㅋㅋ진짜 목숨 건졌다. 점차 날도 개었고, 작은 마을의 가축들은 길가에 나다니기 시작했다.
저 위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우리를 살린 지프차. 감사합니다..
처음에 멀리서 보고 샴염소인줄 알았다..
포카라에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먹은 수제버거. 세상 천국의 맛이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카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쾌청한 날씨와 함께 포근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킴스식당에 가서 순두부찌개를 먹는데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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