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했는데 온몸의 관절이 쿡쿡 쑤시는 게 심상찮다. 창밖을 살짝 보니 아니나다를까 눈이 계속 내리며 쌓여가는 중이었다. 오늘도 트레킹 진행은 실패인가 싶었다. 대책없이 쌓여가는 눈을 보면서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가만히 바라보는 풍경은 참 좋은데..
아침 달밧 파워!!
달밧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당장 할 수 있는게 없었으므로 상황을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저 멀리 하늘도 끝없이 먹구름이었으며, 우리를 제외한 다른 팀들도 다들 막막하게 롯지에서 기다릴 뿐이었다.
마두는 계속해서 절대 올라가면 안된다고 올라갈 수도 없다고 말했고 우리는 공감하고 수긍하며 따뜻한 롯지에서 빈둥빈둥대기로 결정했다. 그치만 그 전날에도 좀 강성이었던 스페인 아줌마팀은 눈을 뚫고 올라가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됐다. 우리는 그냥 눈이 그칠때까지 쭉 쉬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티츄를 치고 낮잠을 자고 하면서 빈둥빈둥. 서로 낮잠타임이 맞지 않을때가 생겨버려서 티츄 어플도 받았다. 참 이땐 티츄에 어지간히 중독돼있었다. 그만큼 재밌기도 했고 시간도 잘 갔고.
그렇게 빈둥대다가 또 출출한 저녁때가 되었다. 눈발은 도저히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우리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 결단이란 바로..
그 결단이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가던 코스는 안나푸르나 라운딩 써킷 코스다. 이 코스에서 가장 절정인 위치가 쏘롱라패스(5416m)인데 여기까지 올라가서 기념으로 따 먹기로 하고 사 온 술이 있었다. 바로 로얄샬루트 38년산. 술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 겉멋만 들어가지고... 아무튼 면세가로도 4~50만원 하는 술을 사 와서 낑낑 짊어지고 올라가던 중이었다. 근데 할 것도 없고 이대로라면 하산을 해야 할 거 같아서 그냥 여기서 까자!는 말이 나왔다.
모두가 한번씩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신나게 맥주도 곁들이고
술판이 벌어졌다.
술 주제에 겁나 비싸고 호화롭다. 붙는 이름도 스톤오브데스티니.. '운명의 돌'이다. 중2병스러운 컨셉을 잘 잡은 것 같았다. 박스개봉을 해 보니 무슨 중세시대풍 판타지 게임에서 나올 것 같은, 퀘스트가 적혀 있을 것 같은 작은 두루마리가 있었다. 오오.. 하면서 묶인 매듭을 풀어보니 제품보증서..였다! ㅋㅋㅋㅋㅋ
로얄샬루트는 21년산은 마셔봐서 로얄시리즈의 맛이 이런거구나 싶었는데 이번에 38년을 마셔 보니 더 깊고 진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맛이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건담이나 로봇들이 기본 외형에서 파츠가 여러개 달려서 더욱 완벽해진 모습. 이 맛도 그랬다. 21년산의 맛에서 몇가지 더 더해져서 완성에 가까운 그런 맛.
로얄샬루트 38년산, 스톤 오브 데스티니.
그렇게 술과 안주를 배불리 먹으며 밖의 상황이나 트래킹은 까맣게 잊은 채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한창 배가 불러올 무렵, 갑자기 롯지 안으로 누군가가 헐떡이며 들어왔다. 아침에 떠난 스페인 아줌마팀의 포터였다. 왜 다시 돌아왔는지, 그 스페인 아줌마들과 가이드는 어디로 갔는지, 무슨 일이냐며. 다음 마을에 도착은 했었고 롯지 안에서 쉬던 중, 건물이 폭싹 무너졌다는 거다. 갑자기 분위기는 싸해지고.. 우리는 명복을 비는 그런 느낌의 잔을 채우고 비웠다. 그리고 우리가 흔들리지 않게 끝까지 붙잡아 준 우리 가이드 마두에게 감사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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